브로드웨이를 울린 작은 로봇들의 노래
6월 8일(현지 시각).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 무대 위에서 박천휴와 윌 애런슨 듀오의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제78회 토니상 10개 부문 노미네이트, 트로피 6개를 품에 안았다. “최우수 뮤지컬·극본·음악·연출·남우주연·무대디자인”까지, 올해 시상식의 최다 수상작이다. 브로드웨이 관객 1,470만 명이 만든 사상 최대 흥행 시즌을 통째로 적셔 버린 순간이었다.
최우수 뮤지컬 –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
뮤지컬 부문 각본상 – 박천휴, 윌 애런슨(Will Aronson)
뮤지컬 부문 남우주연상 – 대런 크리스(Darren Criss)
뮤지컬 부문 최우수 연출상 – 마이클 아든(Michael Arden)
뮤지컬 부문 무대 디자인상 –데인 래프리(Dane Laffrey), 조지 러브(George Reeve)
통합부문 음악상 – 박천휴(작사), 윌 애런슨(Will Aronson, 작곡‧작사)
어쩌면 해피엔딩, 토니상에 닿다
토니상은 1947년부터 이어진 브로드웨이 최고 권위의 상이다. 공식 명칭은 ‘앙투아네트 페리 연극상(Antoinette Perry Award for Excellence in Theatre)’. 영화엔 오스카, 음악엔 그래미, 연극·뮤지컬엔 토니상이 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매년 약 30개 부문에서 시상하며, 한 작품이‘베스트 뮤지컬’을 거머쥐는 건 그 장르의‘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과 같다.
로봇들의 러브 스토리, 어떻게 브로드웨이까지 왔나
2014년 우란문화재단 리딩 룸에서 시작된 작은 아이디어는 2016년 대학로 300석 소극장 초연을 거쳐, 다섯 시즌 동안 국내에서 입소문을 탔다. 섬세한 통번역을 거쳐 2024년 11월 벨라스코 극장에서 브로드웨이 데뷔—프리뷰 당시엔 제작비‧홍보비 부족으로 티켓이 거의 팔리지 않은 채 개막하여, 흥행에 실패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평균 좌석 점유율 93.31%로 이를 잠재웠고. 결국 10개 부문 후보·6관왕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뮤지컬은 21세기 후반 서울을 배경으로 버려진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서로를 발견하며‘사랑’이라는 불완전한 프로그램을 업데이트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의 서툰 감정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다가와, 관객의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울린다.
지금, 한국 뮤지컬은 어디쯤?
한국 공연예술 시장은 공연건수는 31,634건, 공연회차는 125,224회 진행되었고 티켓 예매수는 약 2,224만매를 기록했다(2024년 기준). 이 중 뮤지컬은 공연건수 3,006건(13.9% 비중), 공연회 약 40,872회(32.6% 비중), 티켓예매수 약 783만매(35.2% 비중)로 집계 되었으며, 이미‘공연산업의 버팀목’으로 자리 잡았다.
2010년대 후반부터 한국 창작 뮤지컬은 일본·중화권 라이선스 시장에서 ‘숨은 강자’로 통했지만,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시장의 문턱은 늘 높았다. 이번 수상은 그 벽을 깼다. 한국뮤지컬협회는“〈어쩌면 해피엔딩〉이 초기 창작부터 해외 진출까지 뮤지컬 생태계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했다”며, 뮤지컬을 K-콘텐츠 산업의 차세대 주력군으로 평가했다.
앞으로의 항로
오는 2026년 가을, 〈어쩌면 해피엔딩〉은 볼티모어를 시작으로 로스앤젤레스·시카고·탬파 등 미국 30개 도시를 도는 북미 투어에 나선다. 한편 K-뮤지컬 국제마켓(K-Musical Market) 현장에선 미국 토니상 수상 프로듀서인 레이첼 서스만은 이번 토니상 시상식을 기점으로“한국과 미국 뮤지컬 산업이 더욱 긴밀하게 협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도 “2027년 콘텐츠 수출 세계 4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국가 차원의 지원 전략을 발표한 바 있으며, 이에 따라 국내 관객 저변 확대와 글로벌 시장 진출이 동시에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브로드웨이의 한가운데서 울린 한국어 가사, 그리고 토니상 6관왕. 〈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은 ‘작은 극장에서 시작해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로봇들의 미완성 사랑담은 끝내 ‘해피엔딩’을 맞았고, 한국 뮤지컬 산업은 이제 그 다음 막을 준비한다.
K-콘텐츠가 세계에서 각광받는 흐름 속에서〈어쩌면 해피엔딩>의 성공이 하나의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국내 창작 뮤지컬들도 이 흐름을 타고 더 넓은 무대로 나아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며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화를 이뤄가길 기대한다.